国家が
国民の
健康管理を「
人的資源」の
維持という
観点から
捉える
以上、
快楽に
身を
委ねる
行為は
国家にとって
悪と
見なされざるを
得ない。
한 번 국가가 국민의 건강 관리를 노동력 유지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면, 쾌락에 몸을 맡기는 행위는 국가에게 악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다.
しかし、
個人の
立場からすれば、
現世的快楽に
身をゆだねることもまた、
一つの
生き
方にほかならない。
하지만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현세의 쾌락을 즐기는 것도 하나의 삶의 방식입니다.
「
生きるために
食べる」という
古典的立場から
転じて、
今や「
食べるために
生きる」
人間が
現れているという
事実は、
社会の
価値構造の
変容を
示唆しているに
違いない。
실제로, 살기 위해 먹는다는 고전적인 생각과는 달리, 오늘날에는 먹기 위해 산다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다는 것은 사회의 가치 구조가 변화하고 있음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快楽を
肯定して
早死にするか、
節制して
長生きを
選ぶかは、もはや
医学や
栄養学の
及ぶ
領域ではなく、
個人の
哲学に
基づく
自己決定の
問題にほかならない。
쾌락을 긍정하고 일찍 죽을 것인지, 절제하여 오래 살 것인지의 선택은 더 이상 의학이나 영양학의 영역이 아니라, 개인의 철학에 근거한 자기결정의 문제이다.
ただし、その
際に
自らの
生き
方を
決定する
個人が、
無知であってはならないことは
言うまでもない。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자신의 삶의 방식을 결정하는 개인이 무지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我が
国における
栄養士は、
国家が
制度的に
定めた「
栄養指導者」にすぎない。
우리나라에서는 영양사는 국가 제도상 영양지도원에 불과합니다.
その
主な
役割は、
学校や
病院など
集団給食の
場において、
平均値にもとづいた
栄養管理を
行うことである。
그들의 주요 역할은 학교나 병원과 같은 집단급식시설에서 평균값을 바탕으로 영양관리를 수행하는 것입니다.
だが、
平均値という
概念は、
人間の
身体的差異や
文化的背景を
必ずしも
反映しているとは
限らない。
하지만 평균이라는 개념이 반드시 인간의 신체적 차이나 문화적 배경을 반영하는 것은 아닙니다.
同じ
食物であっても、それを
食べる
個人には
嗜好や
文化的価値観の
違いがあり、
食の
意味は
一様ではない。
비록 같은 음식이라도 먹는 사람에 따라 취향이나 문화적 가치관이 달라지기 때문에, 식사의 의미는 결코 획일적이지 않습니다.
長年にわたり、
近藤家の「かかりつけ
医」として
活動してきたホームドクターは、
患者の
職業・
家族構成・
体質・
病歴・
経済状況などを
総合的に
把握した
上で、
疾病の
処置や
健康維持の
助言を
行ってきた。
오랜 기간 곤도 가문의 ‘주치의’로 활동해온 가정의학과 의사는, 환자의 직업 전반, 가족 구성, 체질, 병력, 경제 상황을 종합적으로 파악한 후, 질병 대처와 건강 유지에 대해 조언해왔습니다.
今後の
栄養学に
求められるのは、まさにこの
医療モデルと
同様に、
集団ではなく
個人を
対象としたコンサルティング
型の
栄養指導にほかならない。
미래의 영양학 분야가 지향해야 할 것은 집단이 아니라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개별 영양 상담 모델이며, 이는 의료 모델과 동일합니다.
食とは
単なる
生存の
手段にとどまらず、
文化・
倫理・
個人の
生き
方が
交錯する
行為である。
식사는 단순한 생존 수단이 아니라, 문화와 도덕,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의 방식이 교차하는 행위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