サッカー
元日本代表">
代表で、
男子の
歴代最多得点記録を
持ち、
1968年のメキシコオリンピックで
銅メダル
獲得に
貢献した
釜本邦茂さんが
10日大阪府内の
病院で
肺炎のため
亡くなりました。
일본 축구 국가대표 출신으로 남자 역대 최다 득점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 동메달 획득에 기여한 가마모토 쿠니시게 씨가 10일 오사카부 내의 병원에서 폐렴으로 인해 별세했습니다.
81歳でした。
釜本さんは京都府出身。
現役時代">時代は高い技術と強烈なシュートを兼ね備えたフォワードとして早稲田大や日本リーグのヤンマーで活躍し、日本代表でも76試合の出場で男子では歴代最多の75得点を記録しています。
현역 시절에는 뛰어난 기술과 강력한 슛을 겸비한 포워드로서 와세다 대학과 일본 리그의 얀마에서 활약하였으며, 일본 대표팀에서도 76경기에 출전하여 남자 선수로서는 역대 최다인 75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なかでも、1968年のメキシコオリンピックでは7得点をあげて大会得点王に輝き、日本を銅メダルに導きました。
특히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는 7골을 기록하며 대회 득점왕에 오르고, 일본을 동메달로 이끌었습니다.
これがサッカー日本代表がオリンピックで獲得した唯一のメダルで、ワールドカップに初出場した1998年より、30年も前に、世界と渡り合えるストライカーとしてその名をとどろかせました。
이것이 일본 축구 대표팀이 올림픽에서 획득한 유일한 메달이며, 월드컵에 처음 출전한 1998년보다 30년이나 앞서 세계와 겨룰 수 있는 스트라이커로서 그 이름을 널리 알렸습니다.
また、1993年にJリーグが開幕した際にはガンバ大阪の監督として、チームを指揮し、れい明期のJリーグを盛り上げました。
또한, 1993년에 J리그가 개막했을 때 감바 오사카의 감독으로서 팀을 이끌며, 여명기의 J리그를 활성화시켰습니다.
その後は参議院議員として国政にも携わったほか、2002年のワールドカップ日韓大会では日本の組織委員会の理事を務め、大会の成功に貢献しました。
그 후에는 참의원 의원으로서 국정에도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2002년 월드컵 한일 대회에서는 일본 조직위원회의 이사를 맡아 대회의 성공에 기여했습니다.
病気で療養中だった釜本さんは10日午前4時すぎ大阪府内の病院で肺炎のため亡くなったということです。
병으로 요양 중이던 가마모토 씨는 10일 오전 4시경 오사카부 내의 병원에서 폐렴으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81歳でした。
男子で歴代最多の75得点 日本屈指のストライカー
釜本邦茂さんは京都府出身で、現役時代はフォワードとしてプレーし、日本代表では1964年の東京オリンピックなど76試合に出場し、男子で歴代最多の75得点をあげた日本屈指のストライカーです。
남자 선수로 역대 최다인 75골 일본 최고의 스트라이커 가마모토 쿠ニシ게 씨는 교토부 출신으로, 현역 시절에는 포워드로 활약하며 일본 대표팀에서는 1964년 도쿄 올림픽 등 76경기에 출전해 남자 선수로 역대 최다인 75골을 기록한 일본 최고의 스트라이커입니다.
銅メダルを獲得した1968年のメキシコオリンピックでは日本のエースとしてチームを引っぱり、7得点をあげて得点王に輝くなど日本の銅メダル獲得に大きく貢献しました。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할 때 일본의 에이스로서 팀을 이끌었으며, 7골을 넣어 득점왕에 오르는 등 일본의 동메달 획득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1978年には現役のままセレッソ大阪の前身、ヤンマーの監督に就任し84年の現役引退まで選手兼監督として活躍しました。
1978년에는 현역 선수 신분으로 세레소 오사카의 전신인 얀마의 감독에 취임하여, 1984년 현역 은퇴까지 선수 겸 감독으로 활약하였습니다.
その後は参議院議員として国政にも携わったほか、2002年のワールドカップ日韓大会では日本組織委員会の理事も務め大会の成功に貢献しました。
그 후에는 참의원 의원으로서 국정에도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2002년 월드컵 한일 대회에서는 일본 조직위원회의 이사도 맡아 대회의 성공에 기여했습니다.
2005年には、日本のサッカー界に長年にわたって貢献した人たちを称える「日本サッカー殿堂」に選ばれたほか2014年には旭日中綬章を受章しました。
2005년에는 일본 축구계에 오랫동안 공헌한 사람들을 기리는 일본 축구 명예의 전당에 선정되었고, 2014년에는 욱일중수장을 수상하였습니다.
2011年のサッカー女子ワールドカップで、澤穂希選手が釜本さんの記録を更新して男女を通じて日本代表での最多得点をあげた際には、「記録は更新されるものなので、うれしく思う」とみずからの記録をこえた澤選手の活躍をうれしそうに話していました。
2011년 여자 월드컵에서 사와 호마레 선수가 카마모토 씨의 기록을 갱신하며 남녀를 통틀어 일본 대표팀 최다 득점을 기록했을 때, 그는 기록은 갱신되는 것이기 때문에 기쁘다며 자신의 기록을 넘어선 사와 선수의 활약을 기쁜 듯이 이야기했습니다.
そして2021年の東京オリンピックでは、地元の京都で聖火ランナーを務め、「この火が消えないように、次のパリ大会や、またその次の大会へつながってほしい」と数々の記録を残したオリンピックへの思いを語っていました。
그리고 2021년 도쿄 올림픽에서는 고향인 교토에서 성화 주자로 활약하며, 이 불이 꺼지지 않도록 다음 파리 대회나 그 다음 대회로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수많은 기록을 남긴 올림픽에 대한 소회를 밝혔습니다.
“日本サッカーの父”と出会い才能が開花
「日本サッカー史上最高のストライカー」として語り継がれている釜本さん。
“일본 축구의 아버지”를 만나 재능이 꽃피어 “일본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전해지고 있는 가마모토 씨
たぐいまれな得点能力を持ち合わせた才能は、日本サッカーの父と言われ日本代表の強化の礎を築いたデットマール・クラマーさんとの出会いで開花しました。
비범한 득점 능력을 지닌 재능은, 일본 축구의 아버지라 불리며 일본 대표팀 강화의 초석을 닦은 데트마르 크라머 씨와의 만남으로 꽃을 피웠습니다.
釜本さんは京都の山城高校の2年生だった1961年にクラマーさんに初めて会いました。
쿠라마토 씨는 교토의 야마시로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1961년에 크라머 씨를 처음 만났습니다.
3年後の東京オリンピックに向けた強化のため、クラマーさんが当時の西ドイツから招へいされ、日本代表の顧問をしていたときのことでした。
3년 후 도쿄 올림픽을 위한 강화 차원에서 크라머 씨가 당시 서독에서 초청되어 일본 대표팀의 고문을 맡고 있었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関西の社会人と大学生を対象に開かれた1週間の講習会に協会のはからいで釜本さんが最年少で参加しました。
협회의 배려로 간사이의 사회인과 대학생을 대상으로 열린 1주일간의 강습회에 카마모토 씨가 최연소로 참가했습니다.
釜本さんは身長が1メートル80センチ近くあり、当時の日本選手としては体格に恵まれていましたが講習会でクラマーさんは、ボールさばきが未熟でプレーのテンポが遅かったことから「クマ、昼寝」などと冗談を交えながら、基礎の技術と素早く攻撃につなげていく手法を丁寧に教え込んだということです。
쿠마모토 씨는 키가 1미터 80센티미터에 가까워, 당시 일본 선수로서는 체격이 뛰어났지만, 연수회에서 크라머 씨는 볼 다루기가 미숙하고 플레이 템포가 느렸기 때문에 쿠마, 낮잠 등 농담을 섞으면서 기초 기술과 재빠르게 공격으로 연결하는 방법을 정성스럽게 가르쳤다고 합니다.
こうしたクラマーさんとの出会いを通して釜本さんは「理論や戦術がなかった時代にクラマーさんの指導はすべてが新鮮だった。
이러한 크라머 씨와의 만남을 통해 카마모토 씨는 이론이나 전술이 없던 시절에 크라머 씨의 지도는 모든 것이 새로웠다고 말했다.
この
人の
言うとおりやればオリンピックに
出場できるかもしれない」と、
世界の
舞台を
明確に
意識して
トレーニングに
打ち
込むようになったと
振り
返っています。
이 사람의 말대로 하면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세계 무대를 분명히 의식하며 훈련에 몰두하게 되었다고 회상하고 있습니다.
その後、強豪・早稲田大学に入学し2年生から日本代表に招集された釜本さんは顧問のクラマーさんから直接指導を受けながら、1964年の東京オリンピックなど国際大会で経験を積み、世界レベルのストライカーとして才能を開花させていきました。
이후 강호 와세다 대학에 입학하여 2학년 때부터 일본 대표팀에 소집된 카마모토 씨는 고문 크라머 씨로부터 직접 지도를 받으면서, 1964년 도쿄 올림픽 등 국제 대회에서 경험을 쌓아 세계 수준의 스트라이커로서 재능을 꽃피웠습니다.
1968年のメキシコ大会では日本代表の不動のエースとして、得点王となる7ゴールの活躍で日本を銅メダルに導きました。
1968년 멕시코 대회에서는 일본 대표팀의 변함없는 에이스로서, 득점왕이 되는 7골의 활약으로 일본을 동메달로 이끌었습니다.
地元、メキシコとの3位決定戦で見せたゴールは、まさにクラマーさんの教えを体現するような正確なボールコントロールから生まれたテンポのよいミドルシュートでした。
지역, 멕시코와의 3·4위 결정전에서 보여준 골은 바로 크라머 씨의 가르침을 구현한 듯한 정확한 볼 컨트롤에서 나온 템포 좋은 중거리 슛이었습니다.
クラマーさんは晩年のインタビューで「最も誇るべき業績」について聞かれた際には、強豪クラブチームの監督として獲得したヨーロッパナンバーワンのタイトルではなく「メキシコオリンピックで日本が銅メダルを獲得したことだ」と語りました。
크라머 씨는 말년에 진행된 인터뷰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업적에 대해 질문받았을 때, 강호 클럽팀 감독으로서 거머쥔 유럽 최고의 타이틀이 아니라 멕시코 올림픽에서 일본이 동메달을 획득한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釜本さんは「クラマーさんとの出会いがなければ、その後の自分の活躍はなかったかもしれない。
쿠라마 씨와의 만남이 없었다면, 그 후의 제 활약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本当に
幸運だった」と
1つの
出会いの
大切さを
しみじみと
口にしていました。
정말로 행운이었다고, 한 번의 만남의 소중함을 절실히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釜本さん選手や指導者として活躍した大阪で悼む声
サッカー元日本代表の釜本邦茂さんが亡くなったことについて、釜本さんが選手や指導者として活躍した大阪では、悼む声が多く聞かれました。
오사카에서 선수와 지도자로 활약한 가마모토 씨를 애도하는 목소리—축구 전 일본 대표 가마모토 쿠니시게 씨가 별세한 것에 대해, 가마모토 씨가 선수와 지도자로 활약한 오사카에서는 애도의 목소리가 많이 들렸습니다.
70代の女性は「1人でサッカー界をけん引してきた方であり、日本のサッカーが盛んになったのは、釜本さんが頑張ったからだと思います。
70대 여성은 혼자서 축구계를 이끌어 오신 분이며, 일본 축구가 활성화된 것은 가마모토 씨가 열심히 해주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残念です」と
話していました。
30代の男性は「父親などからすごいプレーヤーだったと聞いていました。
30대 남성은 아버지 등에게서 대단한 선수였다고 들었습니다
Jリーグが
開幕したときにガンバ
大阪の
監督を
務めていたのが
印象に
残っています」と
話していました。
J리그가 개막했을 때 감바 오사카의 감독을 맡고 있었던 것이 인상에 남아 있습니다고 말했습니다.
サッカーの指導者をしているという30代の男性は「過去の映像を見て偉大な人だと感じていたので、驚きました。
30대 남성으로 축구 지도자라고 하는 분은 과거의 영상을 보고 위대한 사람이라고 느꼈기 때문에 놀랐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今の
日本代表は
強くなっているので、
新しい
時代の
人たちが
当時からの
伝統を
引き
継いでいると
思います」と
話していました。
지금의 일본 대표팀은 강해지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시대의 사람들이 그 당시부터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