私自身の中学生時代を振り返ってみると、当時どのような人間関係を築いていたのか、改めて考えさせられる。
중학생 시절을 돌아보면, 그 당시 내가 어떻게 인간관계를 쌓아왔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例えば、いたずら好きなAと親しくしていた時期もあれば、野球の得意なBや、成績優秀なC、家庭の経済状況には恵まれなかったものの誠実なDと交友を深めたこともあった。
예를 들어, 저는 장난을 좋아하는 A씨와 친하게 지냈던 시기도 있었고, 야구를 잘하는 B씨나 공부를 잘하는 C씨, 경제적으로는 풍족하지 않지만 매우 성실한 D씨와도 친구가 된 적이 있습니다.
しかし、学年が進むにつれてクラス替えが行われるたび、自然と交友関係も変化し、中学三年間を通じて一人の友人と深く関わり続けることはついになかったのである。
하지만, 새 학년으로 진급할 때마다 반 친구들이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친구 관계도 변해갔고, 중학교 3년 동안 저는 누구와도 깊게 친해진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たとえDと夏休みに共にアルバイトをし、「親友」と呼べるほどの関係に思えたとしても、いつの間にか疎遠になってしまった。
여름방학 때 D와 함께 아르바이트를 한 적도 있어서 절친처럼 느껴진 때도 있었지만, 어느새 점점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このような経験は、私だけでなく多くの人に共通しているのではないかと考えられる。
저는 그런 경험이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도 공통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友人関係とは常に変化するものであり、その場限りの付き合いであると言えなくもないが、それは自分自身が求めるものが変わるにつれて、自然と付き合う相手も変わっていくからに他ならない。
우정은 항상 변화하고 있으며, 그것은 일시적인 관계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이유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변하면 함께 걷는 친구도 자연스럽게 변해가기 때문입니다.
私の場合、Aと親しくしていた頃は、私自身もまたいたずらを楽しみたいという欲求が強かった。
저의 경우, A씨와 친해지면 저도 함께 장난치고 놀고 싶다는 마음이 듭니다.
しかし、やがていたずらでは本当の満足感が得られないことに気づき、次第にAとは距離を置くようになった。
하지만 저는 곧 장난이 진정한 만족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점차 A와 거리를 두게 되었습니다.
BやC、Dについても、その時々に私が求めていたものをかれらが与えてくれたのであり、特に意識していたわけではないが、その時の自分にとって有益な相手を自然と選び取っていたのだと思う。
B, C, D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그들은 그때그때 내가 필요로 했던 것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뚜렷하게 의식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 당시의 나에게 맞는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선택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とはいえ、このような相手を「友人」と呼べないかというと、決してそうではない。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친구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一見利己的に映るかもしれないが、「友人」とは自分にとって何らかの益をもたらしてくれる存在であると言える。
이것은 이기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친구란 나에게 어떤 이익을 가져다주는 사람들입니다.
その相手と関わることで自分が得るものがある。
그들과 접하면 뭔가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しかし、重要なのはその「益」や「得」の内容である。
たとえ一度しか会ったことがなくても、その人から受けた影響が人生に大きな意味をもたらしたのであれば、それは立派な「友人」であると言って差し支えないだろう。
実際に会う機会がなかったとしても、例えばその人物をテレビで見たり書籍で知ったりして多大な影響を受けた場合も、広い意味で「友人」と呼ぶことができるのではないか。
もっとも、実際に対面したことがなければ厳密には「友人」とは言い難いかもしれないが、生きていく上で心に影響を与えてくれる存在と出会える機会は、決して多くはないというのが私の実感である。
しかしながら、あなた自身がそうした出会いを求める心構えを持っていなければ、中学生時代はもとより、一生「友人」と呼べる人に巡り合うことは難しいだろう。